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헬름 카나리스 (문단 편집) == 출생과 제1차 세계대전 == 1887년 새해 첫날, 베스트팔리아의 도르트문트의 [[이탈리아]]계 실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.[* 그는 자신이 그리스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제독으로 활약한 [[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]]의 후손이라 생각해 해군이 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. 후에 그리스를 방문해 받은 콘스탄티노스의 초상화를 그의 집무실에 걸어놓기도 했다.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의 조상이 17세기에 북이탈리아에서 독일로 이주한 후 원래 성을 Canarisi에서 Canaris로 바꾼 것이었다.] 1905년 뮈르빅의 독일 [[해군사관학교]]에 입학해 해군 생활을 시작, [[제1차 세계 대전]]이 시작되었을 땐 [[그라프 슈페]] 제독이 이끄는 [[카이저마리네]] 아시아함대 소속의 [[경순양함]] [[드레스덴급 경순양함|SMS 드레스덴]]의 정보관으로 근무 중이었다. 1917년, 드레스덴은 아르헨티나 앞바다에서 벌어진 [[포클랜드 해전]]에서 아시아 함대가 전멸하는 와중에 살아남아 도망친 유일한 전투함이었으나, 컴버랜드 만에 정박해 있는 동안 이들을 우연히 발견한 [[영국 해군]]의 순양함들과 교전 후 항복, 자침하여 전사자 6명을 제외한 승조원 전원이 포로가 되었다. 카나리스 역시 포로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나 곧 탈주했고, 유창한 [[스페인어|에스파냐어]]와 [[영어]] 실력, 한 독일 사업가의 도움으로 1917년 10월 독일로 귀향하는 데 성공했다.[* 여러 국가들을 거쳐 가는 기나긴 여정이었는데 도중에 '''영국을 경유'''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.] 귀국 후 육상의 정보장교로 에스파냐 파견 업무 등을 맡다가 그 해 말 [[U보트|잠수함]] 함장으로 부임, 전쟁 말기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중해에서 상선 18척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